지금 이 히치하이커는 빅뱅으로 향한다 (3)
DAY.2

얼마나 잠들었을까 이른아침 부랴부랴 짐을 챙긴다. 이 숙소에서의 일정은 하루 뿐이었기에 들과 왔던 짐을 그대로 정리하고 효율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들을 효율적으로 정리했다. 이 날부터 휴대용 외장배터리를 크로스로 메는 색(Sack)에 담고 다녔는데, 정말 유용하고 필요해서 매일 들고 다녔다.

7시의 에티오피아는 제법 쌀쌀했다. 기온이 8~10도 정도 되었는데, 우리가 방문했던 2월은 에티오피아에선 늦가을이나 겨울에 해당한다고 했다. 하지만 낮 기온은 25도 이상으로 올라가고 강렬한 태양이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기에 에티오피아의 낮은 또 더웠다. 다시 우리는 짐을 브룩의 검정 오프로드 차량에 싣고 이동을 시작했다. 이동을 시작할 때는 몰랐지만, 우리가 이동하는 거리는 제법 멀었다. 차로 이동하는 총 시간이 거의 4시간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로가 굉장히 좋지 못했다. 메인 도로는 아스팔트로 만들어진 일반적인 도로지만 크랙이 가거나 파인 곳들이 굉장히 많았고, 물소나 염소, 말 당나귀 떼와 이동하는 에티오피아 사람들도 제법 많아 몸이 굉장히 많이 흔들리는 차량이어서 멀미가 있는 사람은 굉장히 힘들겠구나 생각했다.

이동하는 동안 티피카 QC 매니저인 히로상과 다른 두 로스터 분과 함께 동행했는데, 다양한 커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브룩과는 에티오피아를 관찰하며 생긴 궁금증을 물었다. 차량은 남쪽으로 쭉 내려와 웨테암벨라의 안파라라(Anfarara) 워싱스테이션 및 농장을 방문했다. 이상하게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도착하자마자 배가 매우 아팠다. 급하게 화장실을 찾아 물었는데, 저기 저편 끝쪽에 주름진 판넬과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구조물이 보였는데,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왠지 휴지가 준비되어 있을 시설처럼 보이지 않아 휴지를 얻어 이동했더니, 역시나 잘했다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 시절 보지 못했던 푸세식 화장실이었는데 우리나라 재래식 화장실과는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그 구멍이 우리나라 것보다 50%는 작아다는 것이다. 웬지 조준을 잘못하며 큰 불상사가 생길 거 같아 집중하여 일을 보았는데 다행히 나는 성공했다. 이 열악한 환경과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이 이 곳에 오면 발생할 놀람에 대한 걱정을 잠시 해보았다.

일을 마친 후 나는 뒤늦게 드라이밀 뒤쪽 산 능선을 따라 올랐다. 얼마나 올랐을까 책과 영상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커피나무를 내 두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키가 큰 나무도 있었지만 대부분 내 키보단 작았으며 수확이 이미 끝난 후였기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문제가 있어 픽킹하지 않은 커피체리 몇개가 겨우 눈으로 찾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커피 체리 맛이 궁금해 하나를 따 손톱으로 껍질을 벗기고 맛을 보았다. 굉장히 익숙한 맛과 향이었는데, 쭈글쭈글해지기 전의 매끈한 대추나무 열매 같았다. 정상적이고 예쁜 커피체리가 아니어 단맛이 강하진 않았지만, 혀에서 분명 느껴지는 단맛이 있었다. 커피나무 주변에는 다양한 키큰 나무가 있어 햇볓을 가려주어 비교적 선선한 느낌이 들었다. 커피관련 서적들을 봤을 때 쉐이드 트리의 유무가 커피 품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굉장히 강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키 큰 나무들이 만든 그늘은 눈이 따끔거릴 정도로 강렬한 태양에 커피나무의 잎과 체리에 미칠 태양의 영향력을 조금이나마 상쇄시켜줄 것이 분명할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동행했던 사람들 중에 안파라라 농장을 현장에서 관리하는 매니저 할아버지도 같이 있었다. 내 옆에 서 있는 내 키 만한 나무의 수령이 얼마나 되었을까? 라고 물었더니 “음,, 이건 8년 정도?” 저기 있는 저 나무는요? “음 저건 6년 정도?” 라고 대답해주었다. 마치 오락실에 가서 천원 지폐를 교환할 때 주인 아저씨가 한번에 동전 열개를 집어 내는 것처럼 연륜이 느껴졌다. 왠지 모를 신뢰가 갔다.

커피나무가 심어진 비탈길을 다시 내려와 우리는 엘리아스와 매크리아가 준비해 준 점심을 먹으러 작은 오두막 같은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선 역시나 한 어린 소녀가 커피 세레머니를 준비하고 있었고, 뒤편의 가마 같은 곳에선 무언가를 열심히 끓이며 수증기를 잔뜩 내뿜고 있었다. 오두막에 준비된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둘러 앉아 얼굴만한 플라스틱 접시와 물, 그리고 또 와인을 제공받았다. 왠지 이번 에티오피아 산지 여행에서 에티오피아산 와인을 종류별로 모두 마셔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농장 직원분이 압력밥솥 같이 생긴 커다란 솥을 들고 음식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역시 인제라와 다른 형태의 빵도 있었고 솥에선 잘게 썰린 고기와 고춧잎 처럼 생긴 야채를 함께 끓인 음식이 나왔다. 향에 예민한 나에겐 고기에서 은은한 누린내와 육향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왠지 많이 못 먹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엘리아스에게 무슨 고기이냐고 물으니 염소고기란다. 과거 대학교 2학년 때 교수님 지인의 별장에 놀러갔다 염소를 그자리에서 잡고 수육을 먹었던 그리고 누린내에 토할 뻔 했던 어두운 과거가 떠올랐다. 하지만 배가 고픈지라 한 손에 빵을 조금 뜯어 고기덩어리를 집고 입에 넣었다. 제법 먹을만 했다. 인제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인제라는 나에겐 굉장히 어색했다. 과거 지역에 있었던 유명한 빵집에서 사워도우라는 빵을 먹어본적 있다. 담백하고 고소할거란 빵을 기대했지만 그 빵에선 은은하게 올라오는 신맛이 굉장했었다. 기대한 것과 다른 맛이 추가되어 어색해 사워도우란 빵에 대해 조사해보니 발효가 많이되어 소화가 잘되는 대신 산미가 있다고 했다. 인제라는 그 사워도우에 3배 정도 되는 신맛이 있었다. 3배 정도 어색해 먹기 어려웠다.

식사를 마치고 주변 경치를 감상 하다보니 옆에 다른 직원분이 3리터는 되보이는 플라스틱 우유통에 물을 담고 이쪽으로 오라고 신호했다. 비누를 건네주며 물을 부어줄 테니 손을 씻으라는 의미였다. 참 세심한 호스피탈리티에 감동했다. 식사가 마무리되어가는 분위기에 단 것이 생각나 한국에서 가져온 간식을 담아둔 카메라 가방을 뒤적였다. 앞쪽 칸에 잔뜩 눌린 찰떡파이를 발견했는데, 왠지 이곳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 건네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떡은 외국에서는 먹지 않는 음식이기에 굉장히 어색해 할 줄 알았는데, 엘리아스와 매크리아는 맛있다며 연거푸 따봉을 날렸다. 왠지 국위선양한 기분이 들었다.

식사를 하며 마운트 커피의 야마상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의사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안되는 영어로 간단한 이야기가 오갔지만, 그 사이에 볼 수 있었던 야마상의 얼굴엔 친근한 이웃집 삼촌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언젠가 일본에 간다면 꼭 다시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야마상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지만, 커피와 음료를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무얼하냐 물었더니 원두만 판매하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단다.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 누구나 꿈꿔본 형태의 매장이다. 고객과의 소통과 마신 후 긍정적인 피드백에서 오는 희열도 좋지만, 서비스업이라는 큰 틀 안에선 역시나 감정노동인 카페이기에 포장된 원두만 판매하는 스토어의 형태는 꿈 같은 형태의 스토어라 생각된다. 나와 순천에 있는 페이트론 커피의 현경 사장님도 이 형태의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었었다. 하지만 지역사회의 낮은 커피원두 소비력 때문에 분명 운영 실패를 경험할 것을 시작하지 알아도 알았기에, 마음속으로만 간직했었다. 야마상이 굉장히 대단해 보였다.

농장과 가공시설을 구경한 뒤 우리는 다시 차량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는 곳에 대해 히로상에게 물으니 예가체프에 있는 엘리아나의 모플라코 커피가공소로 향한다고 했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길은 굉장히 험했다. 몇시간째 비포장도로로 산골 마을 같은 곳으로 달리기에 네비게이션도 보지 않고 어떻게 이런 오지 같은 곳을 계속 달리냐고 브룩에게 물었다. 브룩은 이미 우리와 같은 여행가들을 태우고 수십 수백번 이와 같이 이동하며 지나와본 길이라 익숙하다고 한다. 아마 4시간 정도 비포장 도로를 달렸을까,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있는 메인 도로로 옮겨 한시간 정도 이동하니 어느새 날은 저물었고, 하늘에선 갑작스레 천둥번개가 치며 소나기가 내렸다. 일본 로스터 친구들은 이를 보며 스콜이라며 놀라워했고, 나는 저 멀리 도로 너머로 보이는 어둑한 하늘에 마치 토르 영화에서 본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큰 번개를 보고 감탄했다. 그렇게 우리는 모플라코 가공시설에 도착했다.

저녁 8시쯤, 조금 늦은 시간에 도착하다보니 모두 허기가 진 상태였는데, 모플라코의 엘리아나와 팀원들은 허기진 우리들을 반갑게 인사하며 환영하고 준비한 다양한 음식들과 음료를 내주었다. 아, 물론 이곳에서도 커피세레머니는 빠지지 않았다. 이 곳에서 먹은 음식은 기존에 먹었던 에티오피아 음식과는 사뭇 달랐는데, 그리스 출신인 엘리아나가 그리스 스타일 음식을 해주었던 것이었다. 굉장히 맛있어서 개걸스럽게 먹어치우곤 엘리아나가 준비해준 에티오피아 전통 춤 공연을 보며 에티오피아 맥주를 사람들과 들이켰다. 한국 로스터 크루는 일찍이 잠들었지만, 일본 로스터 크루는 늦은시간까지 모닥불 앞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를 마셨다. 나는 그 말들은 이해할 순 없었지만, 왠지 그들과 함께하고 싶어 뒤쪽에 앉아 일본어를 경청했다. 무언가 대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아 보이면 옆에 있던 히로상에게 무슨 얘기 중이냐고 묻곤했다.

엘리아나와 함께 일하며 이 곳에서 우리를 서포트해주는 직원 두명이 있었다. 에티오피아 출신인 악숨과 인도 출신인 아이샤였다. 두 사람은 영어를 잘하기에 제법 의사소통이 가능했었는데, 이 날 저녁엔 아이샤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샤는 K-pop이라던가 한국 요리라던가 한국 드라마라던가 한국 문화에 관심이 굉장히 많았고,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한국 레스토랑 사장님과도 친구라며 으스레를 떨었다. 단순히 한국사람이라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엘리아나도 늦은 저녁까지 모닥불 앞에서 일본크루 팀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에티오피아 커피작황이나 가공에 따른 품질의 차이 등 다양한 커피 이야기들을 나누는 모습을 보았다. 엘리아나의 어떠한 이야기도 끊임없이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커피산업에 대해 굉장히 열정적이고 박학다식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때는 몰랐다. 엘리아나는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을. (Heleanna Knows Everything)